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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몸쓰는일/축구

[스압] 축구협회의 만행 (feat 차범근,허정무) [레벨:4] 크을너엄

드디어 우리나라의 월드컵은 끝이 났다.

특히 홍띵보와 축구협회의 우덜식 의리와 책임 회피로 인해 축구팬들은 이제 폭동을 준비할듯 보인다 ㅆㅂ.

 

내가 이때 사건을 글로 작성할 당시에는 조광래 감독 경질이후 축구협회 막장질 할때 빡쳐서 만든거긴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 브라질 월드컵이 98년 월드컵과 비교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게이들도 정말 자세하게 알고

축협이 다시 홍띵보 유임시킨 배경과 잘 비교해보라고 올리는 거니 잘 읽어 보기 바란다. 

 

특히 글읽어보면 차범근이 국가대표 감독 제직당시  있었던 사건들 역시 스토리 라인이  잘 이어질거라 생각되며

축구 협회의 만행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였으므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거라 본다.

 

또한 차두리가 오늘 축구협회 유임 기자회견 이후 분노 한 이유를 금방 알수 있을거라고 본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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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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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우리는 한가지 알아야 할것이 있다.
일본과 공동계최를 하면서 왜 일본이 일본 스럽지 못한 월드컵을 치루었는지...
일본은 아시아 또는 한국에 차범근이란 사람이 없었다면 가마모토 쿠니시게를 "아시아에서의 축구신" 또는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혹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며 자위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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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 (釜本邦茂) 일본에서는 가마모토를 나카타와 더불어 세계적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가마모토는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할 때 일본 대표팀 주전스트라이커였으며
아울러 대회 득점왕(6 게임에서 7 득점)까지 차지한 인물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일본에서는 가마모토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 
그러면서도 일본 축구계에서는 가마모토를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혹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로 부르는데는 주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가마모토가 멕시코 올림픽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유능한 스트라이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 이유는 바로 
한국에 차범근이라는 "거목" 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는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가 아닌 한국의 차범근 이라는 걸 일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2002년 우리와 월드컵을 치르면서 일본이 가마모토 구니시게를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도 차범근 이란 이름 석자 때문에 못했는데

우리는 이때 차범근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당시 차범근감독 무시하고 송혜교가 조 추첨식을 했다.ㅋㅋㅋ

일본이 얼마나 황당해 했을까? 한국은 할수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는...ㅠㅠ

독일의 베켄바우어 같이 축구인으로써 존경하지 않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정말  미개하다는 말 밖에 할수가 없었던 거지....


자존심 강한 일본사람들이 왜 가마모토 보다 차범근을 한 수 위로 평가하는 줄 아냐?

그 이유는 차범근은 유럽 무대에서 확실한 검증을 받은 선수라는 하나의 이유밖에 없어. 
비록 가마모토가 올림픽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 하나 가지고는 차범근한테 안된다는걸 그들도 알고 있는거지. 
이것은 내가 지어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그간 일본 축구 전문가들이 그렇게 얘길 하고 있고, 또한 일본 축구 전문 서적이나 잡지 에서도 이와같이 평가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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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98년 아시아예선이 시작되었다. 
박종환감독이 이끄는 국대팀 1차예선에서 졸전으로 중동팀에게 진후 2차예선의 진출이 힘들게 되자...

축협은 차범근감독에게 찾아가서 국대팀의 감독을 제의 했지만...차범근감독은 거절했다고 한다.

본인은 2010년쯤에 하고싶다며...하지만 끈질긴 축협의 공세에 차범근 감독은 현재 최강희 감독처럼 떠밀려서 수락했어야 했고

그이후 무적의 팀으로 바꾸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국대의 대표팀선발은 차범근감독에게 3명(이상윤 고종수 김도훈)만 뽑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머지는 축협 그러니까 조중연 한명이 다 뽑았다

(구라 같盧???하지만 레알이다!). 좌표: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702/nd_558.html

 

그래도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차범근감독은 착실하게 리빌딩을 하였고 그당시 국대는 서서히 무적의 팀이 되어 승승장구...풍전등화같던 축구대표팀을

동전 뒤집듯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그당시를 언론에서 얘기한 차범근감독 인터뷰를 보면

"내가 하고자하는전술은 아니지만 대표팀구성을 보고 정한것인데 두가지밖에 없고 이 두가지로 골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라고 인터뷰 했었다. 
그 후 차범근감독이 만들어 놓은 월드컵 지역예선 결과는 어느누구도 하지못한 결과를 만들어 놓았지

그시절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은 6승 1무 1패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범근 감독이 만들어 놓은 성과를 이후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지금도 안타깝다.

1패도 마지막 일본전 본선에 올라가는걸 확인하고 편안하게 했던 경기였던지라..덕분에 일본이 올라가게 되었지만 뭐~ 그당시 일본 전력도 나쁘지 않았었지. 

 

하지만 최종예선이 끝나자 우리나라의 축협은 중대한 두가지 실수를 해버리고 마는데...

그것이 바로 거대한 똥같은 사건 즉 중국과의 평가전과 두바이대회참가 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경기 일정은 축협이 차범근감독을 철저하게 무시한 결과라고 밖에 지금도 볼수 없는데
사실 차범근감독은 중국이 본선에 올라가는 팀도 아니고 본선을 앞두고 게임할 필요도 없는 경기이니 유럽의 다른팀으로 대체해달라고 하지만

그 당시의 축협은 우물안의 팬을 가꾸는 화초처럼 중국전을 이기고 본선으로 가는것이 팬들의 기대를 높일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강행 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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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결과 황선홍선수부상이라는 결과를 내고 말았었지.

 

98월드컵실패중 황선홍의 부상이 그렇게 큰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이 축협의 언론플레이 였으며 

추가로 기래기 새끼들 까지 합세하여 차감독은 언론의 못매를 쳐 맞는데

그 이유중 크게 두가지  '1. 하석주의 백태클'과 왜 '2.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았나?' 로 콩가루가 되게 까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후에야 황선홍의 부상이 가장 큰이유 그다음이 하석주의 백태클로 인해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의 관리 부재를 큰이유로 삼았었지만 이러한 결과는

당시 월드컵 진행중 경질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축협과 언론이 했다는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놀랄수 밖에 없었던거 같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두바이대회는 k리그 우승팀이 가는대회인데...보통 사람들은 지금도 잘 모를거다.
암튼 그해 k리그 우승팀이 두바이대회 갔다오면 다음 k리에서 꼴지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는 징크스와 저주가 담긴 대회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유가 체력관리에 허점이 생기기때문에 리그팀들 조차도 가길 꺼려하고 있었고 더욱이 대표팀감독인 차범근감독도 싫다고 했지만  

그 해에 k리그우승팀이 가려고 하지 않게 되자 평가전 같은것을 잡기 힘들었던 생색내기 바빴던 축협이 국대팀을 이용해 최대의 광고효과를 보려 했는지

차감독의 거절을 무시하고 결국 보내버리는 병신같은 일을 해버리고 말았다.(지금 생각해봐도 빡도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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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결과

체력훈련을 한다던 차범근감독의 의견을 무시하고 두바이 강행했다가 대망의 월드컵 본선에서 체력고갈이라는 고통을 당해야 했고

결국 본선1차전 멕시코전에서 하석주의 백태클로 10명이서 싸우는데 패하고 나니 언론들은 멕시코는 우리보다 랭킹도 높고 잘 못하는 팀도 아닌데

졌다고 아주 개 난리가 났었다.

당시기억하는 게이들도 있겠지만 오죽하면 블랑코선수가 공을 발로 잡고 능욕의 플레이를 할 수 있었겠나 이기야!!! 
네델란드전 대패이후 히딩크도 언급했듯이 한국팀 채력이 별로 뛰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2002년 언론보도에 나옴) 
우리팀이 내세울껀 채력인데...바로 두바이대회 휴유증이 네델란드전의 결과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암튼 두바이 대회에서는 우승은했지만 98년의 본선성적은 초라했으며 차범근 감독도 네덜란드전이 그의 월드컵감독, 국대 감독의 경력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차범근감독이 쓰러져가는 중간에 들어와 국대팀 일으켜 세우고 본선까지 간것을 칭찬해도 모자랄판에..
일방적으로 축협은 차범근감독을 경기도중 경질시킨 사건은

차범근감독의 세계적인 축구선수로써의 명예까지 실추시킨것과 같은 행위를 한것으로 현재도 평가받게 되며

국민들이나 축구팬들 또한 축협에 대한 불신을 야기시키는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죽하면 베켄바워가 한국축구협회와 언론의 행태를 보고 차범근감독에게 한국에 있지말고 독일에서 축구감독생활하라며

바이에른뭔헨감독자리를 주겠다고 까지 했을까?

 
하지만 차범근감독 한국에서 할일이 있다며 감독자리 거절하고...

오랜시간이 지난후 중국감독거쳐 한국으로 되돌아 온다.

(해임 이후 차범근은 1999년까지 중국 슈퍼리그 선전 핑안의 감독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K-리그에 승부 조작이 있다는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1998년 8월 12일 대한축구협회는 이 일로 그에게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차범근은 이로 인해 한동안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데에만 전념하며 은둔 생활을 하다가 2003년 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을 맡게 되어 다시 축구계에 등장하게 되었다- 위키 백과)

하지만 그후 지금까지도 감독으로써의 위치는  허정무감독 보다 여론의 평가는 아래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허정무 감독은 거의 코메디언 수준이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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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감독 자신은 은퇴후 자동적으로 받았던 2급자격증을 가지고 2년 이 지난 후 1급자격증을 받은 감독임에도

P급자격증을 가진 감독들을 가르칠수 있는 푸스발레이라를 가지고 있는 차범근감독을 향해 전술이 뭔지 모른다면서 자신이 국가대표를 맡으면

차범근감독보다 더 강한팀을 만들수 있다고 중계하였고

결국 본인이 국대맡아 세운다는 전술이 차범근감독이 해놓은 전술 그대로 했는데

전술미숙으로 양사이드에 약점 노출로 미들싸움에서 밀리면서 졸전을 거듭 하자

결국 히딩크감독으로 바뀌는 능력없는 감독 되버리는 좇망 트리를 타게되었다ㅋㅋㅋ

허접무라는 별명을 달고 나중에는 선수들이 능력없다라는 언론플레이나 하고..(히딩크 5:0 사건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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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국 2010년 대표팀감독을 다시 맡아 지도하고 나름 선전했지만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알아서 잘해줬으니 어찌보면 편하게 감독했다고도 볼수 있는 케이스다.

지금까지도 허정무감독은 P급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대표감독이 된것으로 아는데...ㅉㅉ

 

암튼 차범근감독에 대해 많은것들을 모르고 있는것들을 풀어 보았다.

필력 개씹 종범이지만 대충 정리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이기야. 
 
차범근감독이 우리나라 축구판에서 죽어야 선수시절 그 밑에 있었던 조중연 허정무 이영무 강신우 박성화 김호곤 이런사람들이

우리나라 축구판 자기마음대로 할수 있는 상황이였고 정몽준이 그런 세력들을 잘 견제하며 이끌었지만 축구협회장자리 그만두면서 

결국  기다렸다는 듯이 조중연 축구협회장되고ㅠㅠ...
 
아무튼 차범근감독 P급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축구감독들에게 전술강의를 가르칠수 있는 푸스발레이라를 가지고 있다는것조차 팬들은 그당시에도 모르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시대를 잘못타고 난 케이스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차범근감독이 레버쿠젠에 입단할때 명문구단이었던 슈트트가르트가 차범근을 포기하고 유망주를 키우려고 하다가 팀의 몰락을 가져왔는데

지금까지도 그당시 수뇌부들의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것이 독일 축구계의 생각인것은 안다면

게이들 역시 차범근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4년 현재 축협이 감싸고 있는 홍띵보의 마음은 허접무도 자기랑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니 바로 내칠수 없는거겠지?ㅋㅋㅋㅋ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협회는 아드보카트 감독 후임으로 핌 베어벡 감독을 선임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홍명보 코치를 위해 편법을 썼다. 2005년 9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던 홍명보 코치는 아직 자격증 취득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협회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1급 지도자 강습회의 하반기 일정을 앞당겨 버렸다. “하반기 신청자가 많아서 인원배분 차원에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조정했다”고 했다. 베어벡호가 출범하는데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무자격 논란에 휩싸여 있는 홍명보 코치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반기 지도자 강습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열리지만 홍명보 코치가 빨리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 그 일정을 7월로 당겨버렸고 홍명보 코치는 2006년 7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4~5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이가 불과 10개월 만에 각급 대표팀까지 지도할 수 있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이다. "

김현회 칼럼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40630n10395?mid=s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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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냥 한국 축구에 관심을 꺼야 할거 같다..

 

 

2줄 요약

1. 축구협회 개 막장의 시작

2. 그냥 앞으로 한국축구는 최대 위기